삶의 향기/문학

2009 신춘문예 문화일보 시 당선작

연서화 티스토리 2009. 12. 6. 19:23

 

2009 신춘문예 문화일보 시 당선작

 

 

즐거운 장례식

강지희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壽衣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癌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린다
향 같은 생전이 다시 주검을 덮을 때
조카들의 두런대는 추억 사이로
국화꽃 향기 환하게 건너온다
[출처] 2009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시산문(詩散門)) |작성자 혜전



당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막막하다

시 당선소감 - 강지희




기찻길 옆 우리 집은 탱자나무가 담장이었다. 손에 상처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울타리가 낳은 노란 전구알 같은 탱자에 경부선 기차 소리를 받아 적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자주 내가 쓰는 언어로 세계의 결을 환하게 열고 싶었지만 제 몸을 가시로 감싼 탱자나무처럼 가시 속에 숨은 시의 언어들은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빠져 달아나는 언어의 꼬리, 그 미끄러짐들. 그때마다 나는 네모난 종이로 학을 접었다. 일곱 번 몸을 접고 마지막 날개를 펴주어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 내 언어를 들고 푸른 신호등을 따라 삼각지 로터리를 도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옷깃을 파고 들었다. 갑자기 마른 몸을 털며 종이학이 날아오르고, 갖가지 색깔로 접었던 물고기들이 별로 살아나 파닥이기 시작했다.

당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두렵고 막막했지만 가시가 심장을 찔러대도 모든 아픈 몸들을 보듬으며 나아갈 것이다. 칠년 만에 보내준 화해의 품 안엔 가시가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믿듯 나의 시를 믿기로 한다.

부족한 제 시에 손을 들어주신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언어를 빛나게 갈고닦아 시에 부려 놓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이기철 교수님, 시어가 대상과 나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몸과 현실을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 손진은 교수님 두 분께 두고두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도 모자라는 느낌이다.

늘 바쁘게 쫓기는 시간들을 불평 없이 뒷바라지해준 남편, 수능으로 고생하는 딸 지수가 고맙고 당선 소식에 가장 기뻐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함께 보듬고 격려해준 영남대와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문우들이 떠오른다. 지면을 빌려 따뜻했던 마음들에 손을 내민다. 저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1963년 영천 출생

▲영남대•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재학중

▲페이퍼 로즈 공예연구실 원장



<2009 신춘문예>
죽음에 대한 생각 뒤집는 역설의 묘미 탁월

시 심사평




▲ 시 최종심사를 맡은 시인 황동규(왼쪽), 정호승씨. 예심은 시인 황인숙, 김기택씨가 맡았다. 김호웅기자



최종심까지 올라온 8명의 작품 중에서 마지막 남은 작품은 이강해씨의 ‘집들이’, 강지희씨의 ‘즐거운 장례식’ 2편이었다.

‘집들이’는 탄탄한 내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이 먼저 단점으로 지적됐다. ‘사랑은 시작하기도 전에 슬프고/ 살아보기 전에 무덤이다’ 등의 표현 또한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멋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져 자연히 ‘즐거운 장례식’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됐다.

‘즐거운 장례식’ 또한 단순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으나 그러한 단점보다는 죽음을 보는 눈이 새롭다는 장점을 더 높이 샀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기존의 생각을 즐겁게 뒤집는 역설적 묘미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나름대로 높은 시적 성취도를 이루고 있다.

‘관을 들어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작은아버지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긍정성과 순응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자 기쁨의 축제다.

작은아버지는 ‘암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릴’ 정도로 오히려 남은 가족들을 위로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이 반어적 발상을 통한 시적 구현은 이 시인의 앞날에 대한 신뢰의 깊이를 더해준다. 앞으로 한국시단을 빛내는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2008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 /- 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여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늬 교복치마가 펄렁, 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 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작업 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 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기사 게재 일자 2008-01-01
고통을 긍정으로 극복하는 힘 돋보여
시 심사평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강산의 ‘천렵’, 김연아의 ‘밤의 지평선 아래’, 김중곤의 ‘불알을 끼우며’, 문정의 ‘하모니카 부는 오빠’ 등 4편이었다.

이 중 ‘천렵’은 천렵의 의미가 은유화되지 못하고 지극히 식상하다는 점에서, ‘밤의 지평선 아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불알을 갈아 끼우며’는 해학적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산문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각각 제외되어 자연히 ‘하모니카 부는 오빠’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는 현실적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고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에 큰 장점이 있는 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아픔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힘 같은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는 시다.

그래서 이 시는 전반적으로 화사하다. 그렇지만 그 화사함이 추하거나 가볍지 않고 따뜻하고 정답다. 진솔하고 꾸밈 또한 없다.

마치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꿈과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 것 같다. 현실 인식의 시들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데 반해 이 시는 긍정적이고 밝다.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 속에 있는 ‘킬링필드’의 고통조차도 모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앞으로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오세영·정호승

몇년 동안 안고 산 詩의 그늘 걷혀
시 당선소감 - 문정

짙은 안개 속으로 출근을 합니다. 햇살은 아직 산속에서 종종거리고 있습니다. 안개에 어둠이 잔뜩 물려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갑갑하기도 무섭기도 합니다. 나는 앞차의 엉덩이에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안개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갑니다. 안개가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습니다.

3교시 수업 끝내고 쉬는 시간 불현듯 전화를 받습니다. 사방의 안개가 걷힙니다 몇 년 동안 꼭 안고 살아온 시의 그늘도 걷힙니다. 나는 벌판에 전신주처럼 서 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열심히 당선소식을 퍼 나릅니다. 흥성거리는 햇살이 벌판에 가득 차올라 있습니다.

금방 사연이 바짝 말라버립니다. 나는 홀로 두리번두리번, 꼼짝없이 벌판에 붙박여 있습니다. 알알이 드러난 내 몸뚱이를 내려다봅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시 어딘가로 숨고 싶습니다. 내일이면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 내 몸뚱이 가려줄 어둠 한 폭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요.

먼저 부족한 시를 선뜻 뽑아, 시의 꽁무니에 불을 붙여주신 오세영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고맙습니다.

허락도 없이 시의 소재로 차용한 이 땅의 그늘 깊은 사람들께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땅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채찍질해주던 여러 스승들과 친구들에게도, 고집불통 글쟁이 남편 때문에 내내 마음에 바람만 안고 살아가는 아내에게도, 올망졸망 예쁘고 순결한 내 어린 눈망울들에게도, 고마움 한 구절 이렇게 뽑아 올립니다.

▲본명 문정희
▲1961년 전북 진안군 백운면 출생
▲전북대 국문과
▲전주 우석고 국어교사

 

 

 

 

2007 문화일보 신춘문예작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김륭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시적 발상·상상력 뛰어나… 현실고통을 경쾌하게 노래”

시 심사평

?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 1.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최찬상의 ‘폐가 앞에서’, 이용헌의 ‘게발’, 김륭의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등 3편이었다. ‘폐가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고 안정돼 있다는 점에서, ‘게발’은 시적 형성력이 뛰어나고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으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점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어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는 시적 발상과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실의 크고 작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정도로 마취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에서 오는 이 위안의 마취력은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독백이 시종일관 시 전체를 끌고 가는데, 그 화자는 실은 대응력이 결핍된 실직자다. 실직당한 이의 고통스러운 현실적 상상력이 이러한 역설적 상상력의 시를 낳은 것이다.

선자들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크게 신뢰가 갔다. 엄숙함과 진지함에서 벗어나 이토록 경쾌하게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도 드물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천양희·정호승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최명란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심사평


시적 형상화 탁월--- 상상력 빼어나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외 네 편을 응모한 최명란씨의 작품들은 그 어느 시를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좋을 만큼 빼어난 것들이다. 탁월한 시적 형상화 능력과 적확한 언어 구사, 기발하면서도 활달한 상상력, 절제된 담백한 어조는 이 신인의 만만치 않은 문학적 내공을 짐작케 한다. 작품들은 주로 고된 삶을 다루고 있다. 노숙자, 보도블록 까는 청년, 꼬막 캐는 여자, 야간 대리운전사 같은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명란씨의 시들은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면서 어떤 안쓰러운 사실들의 풍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대상과의 거리를 요구하는 그 풍경은 소외된 인생들의 어두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심미적 안목과 감수성으로 걸러진 언어들에 의해 언어예술로 승화된 풍경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승규씨의 ‘대추나무 이력서’ 외 2편도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규씨의 시들은 맛깔스러운 언어들로 빚어낸 정감있는 이미지, 연기론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적 긴장을 늦추는 산문적인 요소들이 흠이었다.

고원효씨의 작품 중에서는 ‘미더덕의 맛’과 ‘코가 만들어지기까지’ 두 편이 관심을 끌었다. 말의 우연성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시적 전개 방식은 재미있고 독특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적 울림을 이끌어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응모자 모두에게 정진과 향상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황동규·최승호


당선소감

2006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시 당선 소감

" 솟대 끝 나무새처럼 날고 싶다.

내가 새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고,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들도 정녕 모르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것 역시 위로 흐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소통되지 않음에 절망하고, 절망으로 넘어질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서야 했다.

그런 내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이는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였다.

함께 날고 싶었다. 날고 싶은데 날개가 없었다. 그 막막한 상황을 뒤집는 박수소리는 바로 당선 소식이었다.

이제 단단한 등에 날개를 달았다. 내 딸 진이가 가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묻고 까르르 웃는다. 나도 함께 웃는다. 웃음이 이내 눈물로 바뀐다. 이래서 우리 삶은 때때로 감동적인 것을! 아, 우리에게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노래가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 한 마리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나도 함께 가야지. 베란다 화분의 풍로초도 그 사이 또 한 송이 꽃을 피웠다


■ 약력
1963년 진주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즐거운 제사

박 지 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신춘문예 심사평]감칠맛 나는 문장 묘한 울림
시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열다섯 명의 작품이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응모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삶의 궁핍과 고단함의 구체적 경험을 다룬 시가 의외로 많았다. 형식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경향보다는 무난한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신인다운 패기와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박지웅과 노양식씨의 작품이었다. 노양식씨의 ‘푸른, 복어의 집’ 외 2편은 시적 형상화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받았으나 의미의 귀결이 단조로운 것이 흠이었다. 한 편의 시에 담겨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결론이 아니라 음미할 만한 어떤 것이다. 이미지와 리듬, 사유 혹은 심리의 전개 과정, 그리고 말을 넘어서는 침묵과 여백까지, 그 모든 것이 언어예술로서의 시에서는 음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 ’외 6편은 섬세하면서도 격조있는 언어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삼색나물처럼 붙어다니는 아이들’ (즐거운 제사)에서 보듯 감칠맛이 나는 문장, 마음이 스며 있는 언어, 한 편의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솜씨는 보기 드문 것이다.

다른 시 ‘대관령옛길’도 언어에 대한 빼어난 감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 짝 앞에 찰랑거리는 곤줄박이의 저 맑은, 흥분/…/명자나무의 몹시 아름다운 한때’. 이견 없이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을 축하한다. 시인 황동규·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