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음악

귀에 감겨오는 봄날의 블루스,강허달림 1집 <기다림, 설레임> - 안석희

연서화 티스토리 2010. 7. 1. 05:33

 

 

 

[음반리뷰] 귀에 감겨오는 봄날의 블루스, 강허달림 1집 <기다림, 설레임>  -  안석희

 

 

싱글앨범에서 보여주었던 한계를 훌쩍 넘어 깊이와 세련됨을 더한 그의 보컬은 귀를 휘어 감고 가슴 깊은 곳에 닿는 목소리의 힘을 보여준다
▲ 싱글앨범에서 보여주었던 한계를 훌쩍 넘어 깊이와 세련됨을 더한 그의 보컬은 귀를 휘어 감고 가슴 깊은 곳에 닿는 목소리의 힘을 보여준다

 

 

블루스 보컬리스트 강허달림의 첫 정규음반《기다림, 설레임》이 나왔다. 2005년 싱글앨범《독백》을 낸 후 3년 만의 작업이다. 보너스 트랙을 더해 총 12곡이 담겨 있다.《독백》에 수록된 네 곡의 노래도 모두 새롭게 편곡해서 실었다. 연주나 사운드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던 전작에 비해 손색없는 곡으로 탈바꿈했다. 싱글 음반과 비교할 때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강허달림의 보컬이다. 삶을 담아내는 깊이와 진정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현에서 아쉬움이 있었던 싱글의 한계를 훌쩍 넘었다. 깊이와 폭에 세련됨을 더한 그의 보컬은 귀를 휘어 감고 가슴 깊은 곳에 닿는 목소리의 힘을 보여준다.
 
강허달림이란 독특한 이름은 어머니의 성인 ‘허’와 스스로에게 지어준 ‘달림’이라는 이름을 이어붙인 것이다. run music이라는 레이블 역시 이 이름을 따서 스스로 만든 1인 레이블 이다. 서울 재즈 아카데미를 거쳐 안혜경과 함께 페미니스트 밴드 마고의 보컬로 활동했고 블루스 밴드 풀문(Full Moon)의 보컬로 이태원의 'Just Blues'를 주 무대 삼아 공연을 해왔다. 강허달림의 독특한 목소리에 주목한 엄인호의 제안으로 우리나라 블루스의 씬을 대표하는 신촌 블루스를 거쳐 지금은 자신의 밴드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담동 '화수목'과 연희동 '블루버드'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강허달림의 노랫말은 조금 더 질박하다

음반의 문을 여는 <춤이라도 춰볼까>는 매력적인 일렉트릭 기타의 사운드와 귀로 리듬이 잘 어울리는 곡이다. 춤이라도 춰볼까’ 를 반복하는 후렴구가 귀에 쏙 들어온다. 음반제목으로 삼은 여유로운 템포의 <기다림, 설레임>이 그 뒤를 잇고, 처연하지만 숨은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느린 발라드 <미안해요>까지 듣고 나면 강허달림이 펼쳐낸 푸른 베일에 푹 감싸여 세상을 보게 된다. 조금씩 질감이 다른 푸른 천을 위에 마음껏 수를 놓는 그녀의 소화력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옛 일기장>의 너른 폭도 마음에 들고 록 스타일에 가까운 <지하철 자유인>이나 보사노바 스타일을 슬며시 차용한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도 매력 있다. 다양한 스타일을 적당한 폭으로 잘 배치한 남영국의 프러듀싱이 자칫 산만하게 흐를 수도 있는 첫 음반의 모양새를 잘 잡아냈다. 다양한 세션이 참여한 연주 쪽도 나무랄 데 없다. 넘치지 않는 연주를 듣는 귀가 즐겁다.

그래도 음반의 주인공은 강허달림의 목소리다. 슬픔과 덧없음에도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는 생명력. 모순된 두 요소를 한 몸에 안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를 드러내는 목소리. 늘 듣던 흔한 이야기가 이 목소리에 실려 고단한 인생살이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다. 자, 한 아이가 있었어. 꿈을 꾸었지. 아주 어려서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을까. 그래, 그래서 도시로 올라온 거야. 차갑고 비정한 도시에서 상처받을 때마다 어떻게 딛고 넘어섰을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무엇을 돌이켜보았을까? 과연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이룬걸까? 좋은 벗들이 그 곁에 있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은 이야기꾼의 얼굴을 쳐다본다. 이야기꾼이 짧은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연다. 이야기가 다시 꿈틀거린다. 수없이 많은 록, 블루스-재즈 싱어들 - 자매들의 소리가 녹아있는 이 목소리는 함께 길을 걸어갈 다른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한 전범이 될 만하다.

총 11곡의 노래 중에서 <꿈꾸는 그대는>을 뺀 전곡을 강허달림이 직접 지었다. 흔히 자작곡
가수 singer/songwriter의 신화가 작가의 기량을 가늠하는 잣대로 통용되지만 애초 작곡 음악이라기보다 연주 음악에 가까운 블루스 전통에 따르면 노래하는 이가 바로 노래를 창조하는 이다. 그의 곡이 가진 묘한 독특함은 노랫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호흡이 긴 만연체의 노랫말들이 가락의 진행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데서 오는 매력이 있다.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접했던 그의 이력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블루스 전통하고 살짝 닿아 있을 것이다. 블루스나 판소리나 모두 민중-서민, 하층의 구술문화에 기초를 두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흐름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사설조의 긴 이야기를 구비구비 풀어내는 지점과 더불어 촌철살인의 대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 싶다. 긴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 말이다. 문득 잘 정제되어 시어에 가까운 말로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강허달림의 노랫말은 조금 더 질박하다. 이런 흐드러짐은 특히 자신을 드러내는 진솔한 고백의 내용을 노래할 때 장점으로 두드러진다.

음반 대부분을 채운 그의 고백은 진솔하지만 직설적이지 않다. 그래서 텅빈 무대의 모놀로그와 다르다. 그 주변에는 들꽃이 자잘하게 깔린 벌판이 있고 또 야트막한 야산이 있고 또 망망대해가 아닌 친근한 바다가 있는 듯하다. 왠지 모르게 처연한 고백이어도 살가운 친구가 곁에 있을 듯 한 것은 그의 목소리가 열어주는 세계가 무언가 부족하지만 서로의 온기로 기댈 수 있는 사람들로 이어져있기 때문인 듯하다. 노래는 이렇게 그 사람이 보고 겪고 그리는 세상이지 않을까싶다. 우리나라에서 블루스라는 장르가 그렇고, 오직 음악을 하고 싶어 서울로 올라와 치열하게 살아갔던 그의 경험이 지금의 음악 사이에 배어 그의 고백이 넋두리로 빠지는 것을 불끈 움켜쥔다.     

오랫동안 봄날과 블루스는 궁합이 좋지 않다 생각해왔다. 지금도 다른 계절에 비해 그렇다 느끼지만 문득 봄 꽃 지는 모습 보며 강허달림의 노래들이 귀에 부드럽게 감겨오는 것을 느낀다. 꿈처럼 핀 목련과 화사한 벛꽃 질 때, 짧은 봄날을 아쉬워하기보다 무성하게 푸르름을 자랑할 다음 계절을 기대한다. 멋진 강허달림의 스타트를 보고 어찌 달리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있을까.



안석희 _ 작곡가, 노리단 예술감독
유인혁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노래를 만들었다. 지금은 하자센터 노리단Noridan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나무를 깎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자르고 쇠를 갈아서 악기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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