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來蘇寺]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변산반도 남단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 신라의 혜구(惠丘)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해 이 절을 찾아와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내소사로 바꿨다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이 절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과 최자의 〈보한집 補閑集〉
가운데 정지상이 지은 〈제변산소래사 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있고,
'내소사'로 바뀌었는지 분명치 않다. 1633년(인조 11) 청민(靑旻)에 의해
중건되었고 1902년 관해(觀海)에 의해 수축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법화경절본사경(보물
제278호),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이 있고
그밖에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연래루(蓮萊樓)·3층석탑 등이 있다.
내소사대웅보전

내소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291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로 다포(多包) 계통의 불당이다.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모서리기둥[隅柱]만 배흘림이고 나머지는 곧은 원기둥[圓柱]이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중앙칸에 사분합(四分閤)문을, 좌우칸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짝은
초화무늬[草花紋]가 정교하게 투각된 꽃살문이다. 처마를 받친 공포는 다포계로
중앙칸에 3개, 좌우칸에 2개씩 배치되어 모두 11개의 공포로 결구되어 있다.
외3출목·내5출목으로 전통형식에서 벗어나 있으나 쇠서[牛舌]들이 겹겹으로
중첩되어 뻗어나와 있는 공포의 구성은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건물 내부의 5개 출목에 걸쳐진 살미첨차에는
모두 연봉형을 새겼으며 소위 운궁(雲宮)이라는 장식적 형태로 변모되어 있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 위의 공포에 걸쳐졌는데 자연 그대로의 굽은 재목을 사용했다.
대들보 위에 동자형(童子形)의 대공(臺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우물천장을
가설했다. 대들보에서 건물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치도록 각각 2개씩의
충량(衝樑)을 배치했다. 건물 내부의 뒤쪽에는 두 기둥을 대들보에 고정시켜 세우고
그 사이를 후불벽(後佛壁)으로 만들었다. 불단 위에는 아미타구품인을 한 불좌상과
좌우에 보살좌상을 안치했고 그 위에 닫집을 따로 설치하지는 않았다. 건물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며, 평면은 중후한 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에 비해 기둥
높이가 낮아 단정한 느낌을 준다.
내소사의 대웅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님 좌측에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내소사의 본전이다. 조선후기에 건립하였으며 철못을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었다.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연꽃과 국화꽃을 가득 수놓아
화사한 꽃밭을 생각나게 한 문살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 문살은 법당 안에서
보면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비출 뿐이다. 이 대웅전은 화려하지만 시끄럽지
않은, 그리고 장중함보다는 다정함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다. 불상 뒤 벽에 그림
관음보살상은 관음상의 벽화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내소사고려동종

고려시대에 제작된 동종(銅鐘). 1222년 작(고종9년). 보물 제277호. 높이 103cm,
입지름 67cm, 무게 420kg. 내소사에 있으나 원래 변산반도에 있던
청림사(靑林寺)의 종이다. 청림사가 폐사되고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1850년(철종 1) 현위치로 옮겨왔다. 종의 입구[鐘口]가 종의 몸체[鐘身]보다
약간 넓고, 정상부에는 생동감있는 용조각으로 된 고리[龍]가 있으며 그 옆의
원통기둥인 용통(甬筒)에는 구슬이 둘러져 있다. 종의 어깨 위에 연화를 내포한
여의두(如意頭)무늬의 꽃장식이 2겹으로 있는데, 용통 위의 구슬장식과 함께
고려종의 특색을 보여준다. 종 어깨와 종 입부분에 문양대를 두어 모란당초무늬를
돋을새김했다. 4개의 유곽(乳廓) 주변의 문양대는 종의 어깨부분 문양대보다 조금
좁으며 연주무늬와 당초무늬를 양각했다. 유곽 속에는 각각 9개의 꼭지가 있는데
모두 연꽃 모양의 둥근 받침에서 돋아난 꽃봉오리 모양이다. 유곽 밑에 있는
당좌(撞座)는 종을 치는 부분으로 연화 형태인데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잎이 좁은
연잎이 많이 달려 있다. 종 몸체 중간에는 4곳에 활짝 핀 연꽃이 떠받치는 구름
위에 삼존불상을 돋을새김했다. 본존은 연화좌 위의 좌상이고 양협시보살은
입상이다. 모두 둥근 두광(頭光)을 갖추었고 광배에서 피어오른 서운(瑞雲)이 길게
꼬리를 날리고 있으며, 그 위에는 수식(垂飾)이 바람에 나부끼는 천개(天蓋)까지
표현되어 있다.
잘 보여주고 있다. 종신에 "貞祐壬子六月初七日邊山靑林寺金鐘鑄成入重七百斤"과
"餘己酉九月七日卜居靑林翌年九月七日鑿此金鐘移懸于來蘇寺"라는 명문이 있어 종이
청림사에서 만들어진 후 내소사로 옮겨진 경위를 알 수 있다.
내소사3층석탑

우리나라의 석탑은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채취되는 자연적인 조건으로 인해
석탑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 특히, 고려시대의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전통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약간의 변형을 시도하여 일반화된 양식으로 성립된다.
내소사 고려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탑이나 신라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제작
연대는 미상이다. 높이는 3.46m이며, 맨 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 돌을 이용한
것이다.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상륜부(相輪部)는 탑두부라고도 하며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식부분이다.
노반(露盤)위에 둥근 석재를 올려놓았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지붕돌의 경사도 심한 편으로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탑신부는 탑의 몸체를 이루는 부분으로 2층 기단(건물의 외관을
장엄하게 하고 빗물이 건물 안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고 습기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건물은 단위에 세워진다. 이때 이 단을 기단이라고 부른다.)
위에 3층탑이 올려졌다. 기단부는 탑의 기초가 되는 부분으로 탑신부와 상륜부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지정되었다.
내소사 영산회괘불탱(조선시대1700년)

보물 제 1268호
이 괘불탱화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4구의 보살과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등을 그린 석가칠존도(釋迦七尊圖) 형식의 영산회상도이다. 조선 숙종 26년에
만들었으며 가로 9.95m, 폭 9.35m의 크기이다. 보살들의 둥글고 밝은 표정에서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으로 채색이 다른 괘불탱화와는 달리 중간색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부처 뒤의 큰원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를 나타낸
것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호나 불교 행사를 할 때 걸어두는 그림으로
법회의 성격이나 의식의 종류에 따라서 맞는 것으로 봉안한다. 이 영산회상도는
장수와 극락의 정토를 기원하는 영산재(靈山齋)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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