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예심평
“유력 대선주자들이 실명으로 등장해 가상 토론을 벌이는 작품들이 다수 응모했습니다. 요즘 각광받는 펀드도 등장하고, 이라크 무장단체가 한국인을 납치하는 작품도 있더군요.”(문학평론가 김미현)
“올해의 특징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예민한 관심’으로 압축될 것 같습니다. 오피스텔이 시의 공간으로 제시되고, 대선 못지않게 청장년층의 실업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많았습니다.”(시인 박상순)
2008년 새해를 여는 신춘문예 예심 현장은 문학의 새것을 보고 싶다는 기대가 충만했다. 소설 예심은 소설가 구효서·천운영, 평론가 우찬제·김미현 씨, 시 예심은 시인 박상순·정끝별, 평론가 이광호 씨가 맡았다.
소설은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여전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도 있었다. “상처와 억압이라는 전통적인 가족 로망스 사이로 이민자가 포함된 다인종 가족의 성립과 지속 가능성을 탐색하는가 하면”(김미현), “일탈이 아닌 치유와 포용이라는 가족 본래의 기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한 작품들이 등장했다”(우찬제).

예심위원들이 신춘문예 응모작을 심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끝별·이광호·김미현·박상순·구효서·우찬제·천운영씨.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사람이 퇴장하고 동물들, 특히 도마뱀, 햄스터 등 애완동물을 소재로 쓴 작품도 많아졌다. 예심위원들은 “정보·산업화에 따른 소통의 단절과 애완동물 기르기 추세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천운영 씨는 “글 쓰는 사람들이 동물밖에 접촉하는 것이 없어 그것밖에 쓸 수 없는 데 따른 경험의 한계와 자폐적 글쓰기를 우려한다”고 경계했다. 반면 김미현 씨는 “소설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론을 폈다.
구효서 씨는 일부 응모작에서 나타나는, 논리가 결여된 글을 인터넷의 폐해로 해석했다. “장면과 장면을 논리 없이 연결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앞글과 뒷글을 단순히 연결했다는 점에서 블로그 글쓰기일 뿐이다.”
시 부문 응모작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산문화 경향에 토론이 집중됐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시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장문(長文)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시인 박상순 씨도 “응모자들이 일상을 서정적 음풍농월의 대상이 아닌, 시가 출발할 구체적 현장으로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시인 정끝별 씨는 “중년 여성의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 30~40대로 보이는 시적 자아들의 농염한 에로티시즘으로 표현되고 있다”면서 “다만 문학적으로 승화되었는가는 유보적이다”라고 말했다.
응모작 총 6649편 오랜만에 증가
2008 신춘문예는 최근 수년간 지속된 감소세를 벗고 오랜만에 응모작 증가라는 고무적인 현상을 보였다. 시 4599편과 단편소설 435편을 비롯해 시조 동시 동화 희곡 문학평론 미술평론 등 8개 분야에 걸쳐 6649편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6509편)보다 140편이 증가한 수치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의 증가와 청소년에서 노인층까지 고루 응모한 점, 미국·일본 위주였던 해외 응모작 분포가 유럽과 중동 국가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신춘문예가 문학의 저변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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